2023 디자인시스템 워크숍 회고

배경

저는 배워서 남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8년째 IT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데요. 일하면서 제가 다른 분들에게 배운 것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감사한 제안을 받아 디자인 실무 강의, 서적 집필 등의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디자인시스템 워크숍은 제 커리어와 밀접한 주제라 꽤 오랫동안 진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수락했는데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 생각보다 어려운 부분도 많았어요. 그래서 저도 계속 공부하며 방식을 발전시키게 되었고, 그 과정이 하나의 재미있는 프로젝트라고 느껴져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진행

디자인시스템 워크숍은 20~40명의 수강생과 함께 총 8주 간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1.
실시간 장치 (피그마, 줌, 디스코드, 노션 활용)
2.
전문성 장치 (커리큘럼, 직접 쓴 출판 교보재 활용, 업계 다른 직무 현직자 특강)
3.
쌍방참여 장치 (조별 활동, 현장 실습 유도)
4.
자율참여 장치 (수업 이후 조 내외부 논의 및 피드백을 통해 프로젝트 개선 유도)
5.
동기부여 장치 (프로젝트 단위 과제, 최종 발표, 우수작 링크드인 추천사 발급 등)
1. 실시간 장치 - 비대면 실시간 수업
현업을 하면서 오랫동안 강의를 진행하려면 대면 수업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업무를 마치면 아무리 빨리 퇴근해도 오후 6시인데, 물리적인 장소가 정해지면 이동하는 데 시간을 과도하게 많이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강생 분들도 마찬가지 상황을 겪게 되고요. 그래서 수업에 지리적인 한계를 두고싶지 않았습니다 + 주말엔 강의준비 겸 쉬고 싶었습니다.
피그마/피그잼(실시간 협업 및 과제), 줌(수업), 디스코드(비동기 채팅)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대면 교육의 핵심 장점은 여러 수강생과 강사가 얼굴 보고 실시간으로 직접 질문하는 면학 분위기라고 생각하는데, 이를 실시간 마우스 커서와 화상강의, 커뮤니티 채팅으로 보완했어요. 이를 잘 하려면 의도치 않은 상황이나 질문에 대한 강사의 대처 능력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능숙해지는 것 같아요.
2. 전문성 장치 - 강의 자체의 퀄리티 컨트롤
수강생 입장에서 강의를 듣는 목적은 해당 분야 역량 향상입니다. 아무리 여러 장치를 도입해도 강의의 전문성이나 유익함이 뒷받쳐주지 않으면 않으면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전문성 확보를 위해 아래와 같은 구성으로 진행합니다.
기본적으로 집필한 책에서 필요한 내용을 선정해, 툴 기초부터 실무 시스템 방법론을 통해 가상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는 방법을 시연합니다.
강의가 일방향이 되지 않도록 거의 매 주 과제물을 내주고 다음 시간에 밀착 피드백합니다. 이 시간을 상당히 많이(40%) 할애합니다.
강의 시간에 실습을 유도합니다. 수강생들끼리 조를 지정해 디스코드로 음성채팅방을 열어 논의하게 하거나, 피그마에서 협업하게 하는 등이요. 저는 협업 장소에 차례로 들어가 맞춤식 도움을 드리고요. 강사가 이야기를 주도하는게 아닌 조원들끼리 수업 안에서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시간으로 만들어 서로가 라포를 형성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현직 UX라이터, 개발자 분들을 초빙해 디자인 시스템과 관련 있지만 다른 전문성을 가진 분들의 세션을 함께 구성해 다양한 관점을 습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짧은 시간 동안 필요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면서, 실습이나 과제 피드백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수강생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며 학습하는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3. 쌍방참여 장치 - 강사와 수강생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핵심 수강직군인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소수 인원의 스타트업에서 1인 디자이너로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업이 아니라면 더더욱 협업 경험이 없을 것이고요.
그런데 이 워크숍은 시키는 게 많아서 완수하기 힘듭니다. 많은 사람이 수강 신청을 했더라도, 도중에 몇 명이나 이탈할 지는 워크숍 시작 전까지 알 수 없는데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면 남은 사람들의 동기부여에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수강생이 직접 실습하는 시간을 꼭 할애하고 조별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중간에 힘든 시기가 찾아오더라도 조원들끼리 서로 동기부여하며 프로젝트를 끈기 있게 진행할 수 있도록이요. 각 조의 조장에게는 워크숍 과제 프로젝트의 진행이나 결정 권한을 위임해, 정리된 상태로 과제물을 받아보고 피드백할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매 수업이 끝나기 5분 전에는 피그잼에 모여 ‘어땠나요?’ 라는 시간을 가지는데요, 짧은 시간이지만 이번 회차의 간단한 후기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수강생분들과 라포를 형성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강의에 대한 유익한 제안사항이 나오면 고려 후 반영하기도 하고요.
4. 자율참여 장치 - 수강생끼리 나눈 의견 기반 프로젝트 개선
디자인 시스템은 여러 사람이 사용할 목적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라 협업 경험이 무척 중요합니다. 담당 제품이 커질수록 시스템을 혼자 만들고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인데요. 이를 잘 하려면 내가 만든 시스템 초안을 다른 디자이너가 어떻게 생각하고 사용하는지 스스로 조사하고 깨닫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통일성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조 내부에서 어떤 부분들을 체크하면 좋은지 강의 중에 피드백을 드립니다.
조별 프로젝트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강사인 제가 아닌)조장에게 위임하고 자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게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프로젝트를 강의 중후반에 1차로 정리해, 다른 조와 바꿔서 써 보고 피드백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강생 분들이 수업 중간, 수업 이후에도 프로젝트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 서로 발전시키며 시너지를 낼 수 있게 유도했습니다.
5. 동기부여 장치 - 워크숍이 끝나면 얻는 것
이렇게 시키는 게 많은 워크숍이니, 끝났을 때 멋지게 완수한 수강생 분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보람된 부분이 있고, 어떤 식으로든 그것에 대한 인정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링크드인으로 최우수 조와 개인을 선정해 추천사를 작성해 드리고 있는데요. 이례적으로 대부분의 수강생이 잘 해주셨을 경우 우수 추천사를 추가로 발급하기도 합니다. 추천사 이력은 제 링크드인에서 모두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최우수 추천사 선정 개념을 처음부터 알려드리고, 평가 기준을 공지합니다. 최우수 평가는 8주 간 만든 시스템 작업물과 최종 발표의 전달력을 함께 고려해 진행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프로젝트와 발표를 모두 준비할 목표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을 목표로 하고 마지막에 좋은 결과물을 도출하려면, 워크숍을 듣는 과정에서 다른 다수의 디자이너(지망생) 분들과 진지하게 논의, 합의하는 경험이 필수적입니다. 혼자 진행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실무 역량에 필수적인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길러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좋았던 점

1.
워크숍과 별개로 제가 쓴 디자인 책의 초고를 교보재로 활용해서 시너지를 낸 점이 좋았습니다. 최종 출판 원본 PDF본이 아니라 사용 여부에 대해 출판사와 협의하기도 쉬웠고, 체계적, 효율적으로 강의를 진행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2.
저는 디자인에 정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강사인 제 강의나 피드백에 더하여 조원들끼리 토론을 통해 나은 방식을 판단하고 결정, 제안하는 경험 자체가 이 워크숍의 핵심이고, 각 조별로 정답을 만들어나갔던 작은 성공 경험 설계가 3기수에 걸쳐 촘촘히 마련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실습형 강의를 진행하게 된다면 이 부분은 꼭 유지하려고 합니다.
3.
여러 능력자 분들과 적절한 협업과 위임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현직 UX라이터, 개발자 분들과의 초빙 세션을 통해 저 혼자서는 전달하지 못하는 관점을 보강할 수 있었고, 디자이너 플랫폼인 노트폴리오와 협업해 모집, 홍보, 운영 부분을 위임하고 나는 강의 퀄리티 높이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조장을 맡아 진행해주신 모든 수강생 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아쉬웠던 점

1.
강의의 수준 - 강의 수준을 어떤 수강생의 역량에 맞춰야 할 지 항상 어렵습니다. 개강해서 보면 어떤 수강생의 역량이 디자인 초보부터 중급 이상까지 다양하기 때문인데요. 기수별 수준을 초반에 파악해 강의 수준 또한 중위값으로 조절하기는 하지만, 모든 수강생 분들의 니즈를 맞추기 어려운 부분 또한 존재합니다.
2.
형평성 이슈 - 워크숍에서는 과제물을 피드백할 때 과제의 퀄리티와 관계 없이 어떤 과제물은 할 말이 많고 어떤 과제물은 할 말이 적을 수 있습니다. 강사된 입장에서는 공통적으로 참고하면 좋을 것들 위주로 알려드리려고 노력하지만, 피드백을 드리다 보면 조별로 피드백 시간에 편차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준비해온 수강생 입장에서는 ‘내 작업은 왜 피드백이 적을까 ㅜㅜ’ 라는 마음이 들 수 있다는 부분도 인지하게 됩니다. 나름대로 시간을 고려해 세심하게 줄타기하려고 하지만, 이 또한 어렵더라고요.
3.
조장에 대한 베네핏 - 워크숍 중 과제 기반으로 거의 매 주 짧게라도 모든 조의 작업물을 리뷰하는데요. 피드백을 반영하려면 강의가 끝난 후에도 조원들과 따로 모여 작업해야 합니다. 이 때 조장은 조원들 의견을 취합해 나가며 시스템 개선 프로젝트를 이끌어야 하는데요. 때로는 누군가 이탈하기도 하고, 조장이 다른 조원보다 많이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조장 입장에서 기여도가 균일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과정 중 가장 힘들기 때문에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역할이기도 합니다. 강사 입장에서는 이러한 조장 역할에 작게나마 베네핏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는데요(조별 프로젝트 최종 결정권한 부여, 추천사 작성시 조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등), 좀 더 좋은 체계는 없을까 아쉬운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워크숍을 진행하며 고려한 여러 설계와 과정을 기록해보았는데요, 사실 이러한 방식은 비즈니스적으로 확장성 높은 방식은 아닙니다. 온라인 강의를 제작하는 것에 비해 실시간으로 챙겨야 하는 것이 많은 것에 비해, 1회 준비 당 수강 인원도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으로 디자인시스템 워크숍을 계속 진행하는 것은 수강생 분들이 성장하는 것이 눈에 너무 잘 보이고, 그 과정이 저도 보람되며, 제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독자 분에게 강의 구성이나 설계 과정이 재미있게 읽혔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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